아, 게임개발..



 참, 제목 거 뻔뻔하다. 하지만 이런 뻔뻔함이 나 다운 것 아니겠는가. 나는, 나.

 계속 바뻤다. 일중독도 아닌 주제에 일만 하고 앉은 것이 어쩌면 일중독일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지만, 그 보단 일종의 강박 같은 것이 생긴 것 같다. 계속 일을 하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. 그리 심하진 않고, 요즘 바쁘다보니 그리고 워낙에 일에 치여 지내다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준이려니.
 
 게임개발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임을 무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짐작도 하지 못했었다. 그게 개발 2년차가 된 요즘의 심정이다. 한 해에 국내에서만 수천 개의 게임이 오픈을 하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게임이 개발되어지고 있다. 또 잘은 모르지만 그 정도의 개발 프로젝트가 빛도 보지 못한 채 쓰러져 가리라. 오만가지 이유가 있다. 여기에는 틀림없이 오만가지 이유가 있다. 모두가 알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,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수많은 이유들. 
 
 지난 금요일의 일이었다.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'실패감'을 맛보았다. 
 입사 초기부터 걱정되던 우리 프로젝트가 앉고 있는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. 진작부터 이 문제를 알고 있었고, 차차 여러 사람들이 이 문제를 눈치채기 시작했다. 그리고 이 문제의 근본원인을 눈치채게 된 것은 부끄럽게도 채 반년이 되지 않는다. 이제서야 그 해결방안을 찾았고 함께 일을 진행하는 분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. 이번 마일스톤까지의 내 최대목표였다. 업무분담으로 인해 그 문제는 내 전담책임이 아니었지만 그간 그 문제를 지켜만 보고 있던 입장에서는... 근본적인 문제점을 발견했을 때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고,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. 
 그러나, 약간의 미스커뮤니케이션과 매우 복잡하게 엃힌 스케줄로 인해 결국 그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었다. 아니, 해결되지 않았다. 다른 대부분의 내 목표는 달성되었고, 반신반의 했던 또 다른 문제는 결국 미적지근하게 진행되고 말았다. 이는 예상했던 바다. 다만 다음 마일스톤까지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는 수준으로 만족했다. 하지만... 하지만 내 최대목표였던 문제의 해결은 결국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. 담당자들 간에 회의를 했다. 모두들 말을 아꼈다. 누구나 사안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.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결국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.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. 바로 그 시간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. 조금 더 신경 썼더라면... 조금 더 내가 노련했더라면... 내게 주어진 여유가 조금만, 더도 말고 정말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...!!
 여태 살면서 무언가를 향해 그렇게 크게 노력해 본 적이 없었다. 그러다보니 크게 실망할 일도 없고, 실패감 따위가 무엇인지 알 기회도 없었다. 드디어 이번에 실패감이란 것이 무엇인지, 이것이 나를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로 만드는지 처음 깨달게 되었다. 지난 번 QA팀에 의해 그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이래, 나는 이 문제를 더 이상 끌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이번 마일스톤을 기해 다시 한 번 QA팀에 의해 이 문제가 지적되리라. 그들에 의해 지적되는 것은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, 내 자존심과 목표는... 그야말로 참담해지고 말았다. 해결되어야 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니, 그러나 빌어먹을, 우리는 무능력한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!

 적어도 내가 열정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. 
 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게임개발은 정말 어렵다.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, 게임개발자 전문 구직사이트가 따로 존재할 정도로 이 업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다. 우리 스튜디오만 해도 50명이 넘고 회사 전체로 치면 420여명에 달한다. 이름만 대면 모든 초등학생들은 다 알만한 회사부터 다소 매니악한 회사도 있고, 일반인들은 도무지 들어보지도 못했을 신생회사와 영세업체도 줄줄이 있다. 한 해에만도 수천개의 게임이 쏫아져 나온다. 그렇다면 당신은 과연 이 수천개의 게임 중 몇 개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? 바로 이렇게 성공과 실패는 갈라지고 마는 것이다. 
 왠지 이 곳은, 게임개발이란 것은 어린 산업 같고 마냥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것 같으며,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아이들 같을 것만 같다. 그러나, 일하는 사람 마저 그렇게 치기 어린 수준의 업무자세로는 도무지 제대로 프로젝트를 완료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도 분명히 알게 되었다. 50여명의 팀원이 있으면 그 모두가 미친 듯이 달려 들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겠다는 의지와 실력을 보이지 않으면 도무지 가망이 없는 것이다. 그저 안이한 자세로 죄없는 회사(죄가 꼭 없지는 않다만)에서 주는 월급이나 동내고 있으면 결국 회사와 직원과 프로젝트 모두가 고꾸라지는 것이다. 그냥 저 게임이 저랬으니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- 에서 끝나는 얄팍한 발상으로는 도무지 수천개의 경쟁작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란 말이다. 

 요즘은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너무 여유가 없다.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것은 30여년 동안의 경험으로 이제 익숙해 질 법도 한데 도무지 그게 잘 안된다.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점점 쫓기는 기분도 들고 정신적으로도 좀 민감해지는 경향이 있다. 대단치 않은 일에도 과민하게 반응할지 모를 요즘이다(사실 몇 몇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고 있다).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것은 이 몸이 빌어먹을 개발자이기 때문이며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것은 또 이 몸이 빌어먹을 개발자이기 때문이다. 나는, 게임개발자다. 놀랍게도 이런 내가 자랑스럽다. 
 


p.s. 이렇게나 허튼 소리 주저함 없이 늘여놓고도, 실은 아직도 할 말이 가득가득 한 것은, 아마도 내 쌓인 한이 많은 모양이다. 
p.p.s. 그리고, 비단 게임업계 뿐이겠는가.

by 율씨 | 2009/11/01 23:48 | 일기 | 트랙백 | 덧글(8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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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ommented by Dia♪ at 2009/11/02 10:38
고금분투(x) 고군분투(o) ....ㅌㅌㅌ;
힘내세용+_+!!!
Commented by 율씨 at 2009/11/02 13:23
악, 부끄러워;;;; 저런 오기를 당연하다는 듯 사용하고 있었다니;;;
아무튼 고마워요!!
Commented by 택씨 at 2009/11/02 11:44
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힘드시군요.
파악된 문제가 빨리 해결되시길 바래요.
Commented by 율씨 at 2009/11/02 13:24
으흐흐흐흐흐, 비록 이번엔 실패했지만 해결은 시간문제!
응원해주셔서 고마워요!
Commented by 바람소리 at 2009/11/03 14:29
화이팅!!!!!!!
저는 요즘 신경 쓰이는 문제들이 있어서 잔걱정이 늘어 버렸어요.
Commented by 율씨 at 2009/11/03 22:55
하하, 걱정이라면 굵직한 것부터 자잘한 것들까지 난리도 아니지만- 그래도 전 괜찮아요오~
바람소리님도 잔걱정에 치이지 않고 부디 초연하시길!
Commented by 마이즈 at 2009/11/05 13:44
그래도 아직 프로젝트가 접히지 않았고 월급이 끊기지 않고 나온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수 밖에요. 아직 기회는 있으니까요.
Commented by 율씨 at 2009/11/05 22:20
만족하기 보단- 어떻게든 더 나아지게 하려고 몸부림 치는거죠. 하하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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